문양의 비밀: 강릉수보
- 작성일
- 14-06-17 14:11
- 작성자
- 안영갑
- 조회
- 5,723
반추상적이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강릉수보의 다양한 문양속에는
신비스러운 비밀이 숨어 있다. 역사, 자연, 종교, 생활상 등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영동지역 특유의 문화인류학적인 요소들이 담겨 있다.
강릉수보의 문양과 타지역 수보의 문양간에 큰 차이점은 문양에 사용된 대상물이다.
타 지역의 수보는 대부분 화목문양(일명:꽃)이며 이에 나비 문양이 추가된다.
강릉수보에 사용된 주된 문양은 수목문양(일명:나무)이며 부수적으로 새, 꽃, 나비,
길상문자 등이 등장한다. 사방으로 확산되는 방사선 형태의 평면도 문양구조가
일반적이고 좌우 대칭형의 입면도 문양구조도 가끔 보인다.
보는 순간 울창한 숲을 연상케 한다. 풍요와 다산, 부부애, 가족의 번창과 융성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길흉화복에 대한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신앙관이 보인다.
특히 위에서 내려다본 방사선 형태의 나무줄기와 잎, 끝가지에는 솟대처럼 마주보고
있는 한쌍의 봉황이나 오리, 새 등이 등장한다. 문양의 형태는 생략과 단순함으로
처리되어 절제된 느낌을 준다. 회화적인 느낌이 충만하다. 작은 화폭에 많은
문양을 담기 위한 압축과 절제의 미학이 있다. 강릉수보의 창조적인 원천이 되고
있다.
화려한 오방색으로 나무줄기, 잎, 새 등에 미묘한 배색의 치장을 한다.
비단색실의 꼰사와 투박한 자수기법을 사용하여 수보의 회화적인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다. 수보의 바탕천은 명주나 면직이 주로 사용되고 색상은
흰색이 일반적이다. 가끔 검정이나 빨강색으로 염색을 하기도 한다. 화려한
오방색으로 음양오행사상이라는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처음 보는 순간 한폭의 비구상 미술을 보는 느낌이다. 주술적인 원시미술의
신비스러움 그 자체이다.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 강릉지역 특유의 자연적인
풍요로움, 은밀하고 페쇄적인 공간, 천년의 단오제 등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지역적이며, 세계적인 강릉 특유의 규방예술를 탄생시킨
비밀이 있다.
강릉지역에서 발견되는 수보는 네 귀퉁이에 긴 끈을 달아 물건을 편리하게
담을 수 있는 보자기 형태가 대부분이다. 운반하기 편리한 이동식 반짇고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강릉수보를 일컬어 지역사투리인 헝겊 보탱이수라고
구전되고 있음을 볼 때 용도가 분명해 진다.
주된 제작자와 사용자들은 강릉지역 상류층 규방여성들이다. 수보에 사용된
비싼 재료나 자수 솜씨, 회화적인 안목과 여유로움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노동의 제약에서 어느정도 해방된 상류층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낮이 짧고, 가사노동이 적은 긴긴 겨울밤에 규방에 홀로 앉아 호롱불이나
촟불앞에서 아름다운 꿈과 희망,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의식을 담아 아름다운
수보의 제작에 심취한 모습이 엿보인다.
가끔 집성촌 가까이 거주하는 규방여성들이 수보와 야식을 들고 함께 모여
저마다 자수 솜씨를 자랑하고 미학론을 펼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공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드디어 수보의 강릉스타일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혼기가 다된 규방 처녀들은 일찍이 어머니가 만든 수보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란다. 어머니를 통하여 자수의 다양한 비법과 회화적인 안목을
배우게 된다. 많은 실험과 연습을 통하여 자신만의 수보예술을 완성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성를 인정받고 있는 강릉수보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페쇄적인
지역공간, 독특한 종교생활 등이 함께 어울어져 탄생된 지역예술이다.
억압받은 조선시대 규방여성의 한계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꿈과 염원을 심고
애환을 담아 자유롭게 미적 상상력을 펼친 해방 공간이자 예술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