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과 야나기
- 작성일
- 15-06-06 12:41
-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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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은 일제강점기에 불법적인 도굴이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해외반출의 위기에 빠진 국보급문화재의 수집을 통하여 민족문화의
위기를 막은 큰 공로자이다. 가산을 탕진한다는 집안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화의 중요성을 일찍이 선견하고 이를
용기있게 실천하였다.
집안의 가산은 세월과 영화의 부침에 따라 사리질 수 있지만 조선의
문화재는 민족문화의 혼을 지키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를
잘지켜 후세에 영원히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수집과정에서
보여준 간송의 수많은 일화를 통하여 그의 숨겨진 깊은 뜻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어렵게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간송사립미술관은
민족의 보물을 보존하고 지키면서 연구를 통하여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후세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인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는 간송미술관의
집중적인 노력을 통하여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되고 조명되었다.
이와 더불어 조선이 이룩한 백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폭제
역할도 하였다.
간송미술관은 최근에 들어와서 성북동본관중심의 전시활동무대를
뛰어 넘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개관한 동대문디지인
프라자의 2층에 상설기획전시관을 오픈하여 간송미술품의 폭넓은
대중적인 소통과 더불어 다양한 전시활동을 통하여 제2의 창업시대를
맞이 하고 있다.
야나기는 일본에서 태어나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에
예술비평가와 민예품 수집가로서 국제적으로 폭넓은 예술활동을
수행하였다. 특히 조선의 일제강점으로 야기된 무분별한 도굴과
문화재파괴를 보면서 일제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덕수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사립 박물관을 설립하여 조선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많은 기여도 하였다.
일본을 비롯한 한국. 중국.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민예품을
발굴하고 수집하면서 민중예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연구하고
알리는 민예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전후에는 수집된 수많은 유물을 중심으로 일본 동경에 있는 자택을
개조하여 야나기 민예관이라는 일본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설립하고
국제적인 민예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야나기 민예관은 동아시아
공예사연구에 많은 지적인 영감과 학술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간송과 야니기는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조선과 일본에서 민족문화의
중요성과 다양성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이를 개인적으로 용기있게
실천에 옮긴 훌륭한 문화인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양적으로 천개가
넘는 박물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간송과 야나기가 보여준 문화예술
정신을 본받아 법고창t신하는 마음으로 21세기 문화융성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