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남성공예, 안주 수
- 작성일
- 12-02-14 15:06
- 작성자
- 안영갑
- 조회
- 7,304
규방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자수 분야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 평안북도 안주수의 사례이다.
일찍부터 안주지방에서는 자수 병풍을 남성의
장인들이 제작하는 전통이 있어 왔다.
섬세하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자수에서
유교적인 조선시대에 남성 장인이 여성분야에
도전하여 성공한 독특한 경우다.
안주수의 특징을 보면 기본적으로 대작의 병풍수
가 주류이다. 6폭, 8폭, 12폭 등의 다양한 사이즈가
있고 높이는 거의 2m에 이르는 대작이다. 화조도,
수렵도, 경직도 등이 있다.
화조도의 경우 조선시대부터 왜정초까지 가장 많이
유행한 수병풍이며 화려함으로 유명하다. 공단
바탕위에 오방색실의 꼰사를 풍부하고 대범하게
사용하여 화려한 자수를 연출하고 있다.
여성이 놓은 아기자기 하고 섬세한 수병풍에 비해
대담한 기상을 느끼게 한다. 자수의 초보자라도
한눈에 보면 안주수임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개성적이다는 것이다.
안주 병풍수는 조정이나 사대부 가문에서 대례용으로
인기가 높았고 혼례식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었다.
유명장인의 경우 비싼 가격은 물론이고 일찍기 주문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안주 수병풍의 소장은
양반가문의 영광이자 자랑이었다.
그러나 안주수의 화려함에 비해 안주수의 탄생은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속국의 처지인 고려나 조선은
정치적인 위기때 마다 중국 황실에 수시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왕실가족을 인질이나 볼모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왕실가족의 호위무사나 수행원들중 일부는
무료한 중국생활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의
남성장인으로 부터 긴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자수를 배웠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의 인질생활이 풀리고 귀국하면서 이들중 일부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안주에 정착하였고, 생업의 수단으로
불가피하게 자수를 놓게 된 것이다.
독특한 자수솜씨가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안주수는
우리나라의 전통자수 역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남성장인이
개척한 분야가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