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자수박물관

관람후기

사임당 어머니와 지킴이

작성일
12-04-19 10:46
작성자
관리자
조회
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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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임당 어머니와 지킴이      


얼마 전 우리 집을 다녀간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한 컷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오래된 기와집 툇마루 아래 컴컴한 마루 밑을 지키고 앉은  고양이 한 마리의 사진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 한 쪽에 작은 잎처럼 판 박힌 점이랑 앉아있는 품새가 눈에 익었다. 분명 우리 집 고양이 꼬맹이 사진이었다.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어대는 여행객이거니 생각했기에 사진작가인 줄도 모르고 그 땐  범상히 지나쳤었다. 그이는 사진 제목을 “고가를 지키는 고양이” 라고 부쳤다. 어두컴컴한 마루 밑에 우두커니 앉아 형형한 눈빛만 살아있는 고양이의 시선은 사진발 때문인지 고독해보였다.


 강릉 오죽헌 한 자락에 둥지를 튼 “동양자수박물관” 개관식에 다녀왔다. 시동생의 꿈이 영근 현장이었다. 꽤 많은 세월동안 공들여 모았던 수집품들이 이제야 제대로 가치를 드러내고 빛을 보는 듯했다. 새로 단장한 박물관 내부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나무를 제재로 하였기에 우아한 분위기를 살려주어서 주인으로 모신 수예품들을 한층 돋보이게 해 주고 있었다. 야단스럽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도 아담하면서도 품위 있는 박물관이었다. 많은 진심어린 축사가 있었고 그 중에 특히 나의 귀를 끄는 한 마디가 있었다. 강릉 오죽헌의 상징이기도 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라 부르는 대목이었다. 답례의 인사말 속에 시동생은 분명 ‘사임당어머니’라 불렀다. 그 소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들리고 어울렸다.  그가 전통자수에 심취하다보니  사임당을  어머니처럼 친근하게 느끼게 되고 존중하게 되었나 보다. 조선 중기의 뛰어난 유학자이던 율곡 이이를 길러낸 모친이며  예술과 학문에 능하였고 우리 역사의 전후를 통해 모범된 여성상이던  사임당은 알다시피 자수를 하나의 규방예술로 승화시켰다. 전통이나 고전을 공부하는  후학들은 선인들의 사상이나 작품을 흠모하고 사랑하다보면 그들을 사모하며 우러르다가 자연스레 부모님 같은 생각이 들 법하다. 경영학 교수인 시동생은 이제 전통예술 애호가가 되었고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되었다. 정서적으로 늘 시골의 어머니를 그리워했으니 학자로서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다  사임당을 어머니로  만나게 된 것이리라.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전시장의  많은 작품이 시대적으로 비교하기 쉽게 배열되고 동양 각국의 개성도 차별화시켜 논 듯했다. 여러모로 배려해서 신경 써진  진열이었다. 나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나 옛 여인들의 아름다운 자수를 보며 그들의 출중한 솜씨가 결코 현대에 뒤지지 않은 것에 새삼 놀랐다. 그 시절로서는 쉽지 않은  대중 친화의 소재에서 다정하고 소박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전통사회의 높은 장벽 속에 묻혀 살았던 옛님들이 그처럼 상상력 넘치고 뛰어난 발상을 했다니 놀라웠다. 현대와 달리 오래 공들인 그네들의 수예품들이 은은히 한 많은 사연을 품고 음전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또한 중국 자수의 장중하고 세련된 빛깔과 뛰어난 디자인을 보니  그들이 누렸던 화려하고 우월한 문화에 압도도 되었다. 산뜻하고 깔끔한 일본자수는 사무라이 정신처럼 칼칼하고 단백한  일본정서를 느끼게 했다.

 이때껏 나는 전시장에 가서  대강 겉모양만 슬쩍 보고 오는 축이었다. 무조건 예쁜 것만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시동생이 모으는 꾀죄죄한 옛 것들,  때 묻은 자수 작품들이 어쩐지 께름칙하게만 생각되었다. 원래 부모님 유품이래도 예쁘지 않은 것은  싫다고 말하던 내 수준이었으니까.

 전통을 사랑하다보면 눈도 마음도  달라지는 듯싶다. 전통예술애호가들은 나처럼 겉모습의 화려함에만 천착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사상이나 불변하는 미의 가치를 추적해가며 그 예술성에 탐닉했다. 작품이 이루어지던 시대적 상황을 고찰하고 지나간 시대의 풍습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애환을 함께 아파하며 이해하려 했다. 사임당을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친근감은 오랜 시간을 넘어 머나먼 과거와의  단절감을 단숨에 좁혀주는 것이었다. 그 교감을 통해 지나간 시대를 실감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보았다.


  전통예술이 현대의 갤러리에서 관람되면서 예와 지금이 한 자리에서 만나지고 있었다. 시대를 초월해  예술적 공감을 통해  고금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역사는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수집가들을 통해  현대에 이끌려 와  존재하고 재현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무심히 지워버렸던 가치를 되살려보는 시간이고 그것은 잃어서는 안되는 가치였다는 걸 각성하는 자리였다.


  전통 자수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숱한 전란 때문에 그대로 보관하고 지킬 여유가 없었다.  사라지고 망가지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다행히 남아있는 수량이 있다. 이들이 수집가를 통해 박물관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도 어느 집 고방에 틀어 박혀 남았고 어떤 것은  안목 있는 재벌가의 수장품으로 연명되고 일제 수난기에나 6.25의 전란 중 외국으로 휩쓸려갔다 찾아오기도 했다. 아무튼 누군가가 그들을 지킨 것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묻혀버렸거나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아 다행이다. 생명도 없는 것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었는데  살아남은 것이다.

 그들을 지키기에 보냈던 시간은 운명처럼 생각이 든다. 퇴색되고 누추해진 자수제품은 묵은 냄새도 났을 터이고 만일 도중에 화재든 도난이든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이날까지 온전하게 지켜온다는 것은 비록 물건이지만 수집가와의 무슨 운명적 인연이었던 것 같다.


컴컴한 저녁, 어둑한 마루 밑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며 사진작가가 느낀 것은 혹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옛 고가일망정 누군가 지켜주고 있다는 대견함, 안도감 같은 것!,

고양이는 자신이 사는 집을 지키며 떠날 수 없는 애착으로 머문다. 비록 고독하지만 어둔 밤을 오롯이 앉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가치를 사랑하는 것은 고독하지만 그들의 중요한 삶의 이유이다. 지구상에는 많은 옛 유적들이 남아있어 지나간 시대의 진실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찰이나 문헌들에 조상의 흔적이 남아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누군가가 지켜주어 유지되었다. 지금도 전통을 사랑하고  그 역사에 눈을 크게 뜨고 지키고 있는  지킴이가 반드시 있다. 그들 덕택에 역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릉의 동양자수박물관에서 절실하게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통 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그걸 사수하는데 혼신을 다하는 그들이 있기에 자수문화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비록 힘들고 고독한 지킴이 일이지만 .

                                               
2011.1. 12  수필가 송종숙(월간 한국수필 2012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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