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박물관존속에 대한 못다핀 글

2021-11-26 13:35 + 크게보기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의 관장이신 안영갑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2005년 즈음이었습니다. 조각보자기와 자수보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던 제가 자수 유물 컬렉터로 이미 알려져 계시던 교수님께 뵙기를 청한 자리였습니다


시내의 한 카페에서 처음 뵈었던 소탈한 모습의 교수님께서는 강릉 자수 문화의 역사와 강릉 자수의 독보적 미학, 현대적 예술 가치 등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수에 대한 교수님의 진심이 오롯이 전해진 시간이었고, 그 깊은 애정이 자수보자기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 땀 한 땀 눌러 담던 옛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닮았다고 느껴져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2010년에 오죽헌 근처 옛 경포초등학교 건물에 예술 창작인촌이 만들어지며 안영갑 관장님의 소장품들은 2층 동양자수박물관에 자리를 잡았고, 저는 입촌 작가로써 보자기와 규방 공예 작품 활동을 하며 계속 인연을 이어나갔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임영자수 보자기 연구회는 정기전시회에서 동양자수박물관이 소장한 강릉자수 작품을 재현하는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 동양자수박물관 소장품을 재해석하였던 저의 자수조각보 작품을 응용해 제작한 생활 소품으로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찾아가 새롭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지척에 있다는 것은 작품으로, 상품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강릉의 전통적 예술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유물이 자수보자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자수와 규방 공예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울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규방에서 나온 작품들은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졌고, 그 대부분은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먼 뱃길을 떠나는 남편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며 만든 강릉주머니, 딸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염원하며 수 놓아간 자수보자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물건도 쉬이 구할 수는 없고 만들 수 없던 시절에 내 소중한 가족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여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것들. 그 사랑의 마음이 씨앗이 되어 이루어낸 놀라운 미학적 결과물들은 아름다움과 함께 사랑을, 그리고 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양자수박물관을 둘러보며 옛날에 강릉에 살았던 어떤 가족을 상상해 보게되고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그렇게 떠올려본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또 다시 지금 나의 이야기, 나의 가족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은 쉬이 찾을 수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또 동양자수박물관은 강릉 뿐만 아니라 한민족, 나아가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의 많은 자수 작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함으로써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자수문화, 규방공예의 예술성을 접하고 비교할 드문 기회를 지역민과 오죽헌을 찾는 관광객에게 주고 있습니다.


유물 그 자체는 컬렉터의 개인의 것이지만, 그 유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미학적, 심리적 가치는 누구나 함께 향유 할 수 있는 모두의 것입니다. 전통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이고, 그로부터 겸허히 오늘을 배워갈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동양자수박물관은 꼭 존속되어야 합니다


사람도 물건도 마음도 갈 곳을 잃으면, 쉽게 흩어지고 쉽게 약해지고 쉽게 사라지는 법입니다


동양자수박물관을 지키는 일은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강릉의 전통적 자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의 시작으로 예술인을 비롯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지역민의 소박한 소망일 것입니다.


*** 전통규방공예 작가 박인숙(2020. 10월경, 존속을 위한 서명당시 지역언론에 발표할 목적으로 작성된 글임을 알립니다. 아쉽게도 사정상 미발표되었습니다.  사장시키기가 너무 안타가운 글이라고 생각되어  강릉자수와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독자님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올립니다.}